티어 3 : 진실의 요원 (TRUTH AGENT)
돌이킬 수 없는 지점. 이 항목 중 일부는 일반인들 눈에는 광인의 지식으로 보일 것이나,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더 탐구하고 공부하고 싶은 자들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라.
- Thule 툴레
툴레, 툴리Θούλη는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시대에 저술된 문헌과 지도에서 언급되는 세상의 가장 북쪽 끝에 있는 곳이다. 툴레는 그리스의 도시 마살리아(현재 프랑스의 마르세유)의 탐험가 피테아스가 기원전 330년부터 320년 사이에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남긴 수기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마살리아에 도착하는 북부 유럽산 무역품들의 출처를 알아보기 위해 동대서양과 북해 등을 항해하며 툴레를 발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툴레, 혹은 툴레로 추정되는 곳을 여행하며 "백야 현상이 일어나고, 땅과 물, 얼음과 섬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곳"이라고 언급했다. 중세 후기부터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툴레는 종종 서구인의 관점에서 "알려진 세계의 경계 너머에 있는 먼 곳"을 가리키는 말로 울티마 툴레Ultima Thul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툴레의 실제 위치를 노르웨이나 브리튼섬 북쪽 멀리에 있는 페로 제도, 혹은 아이슬란드로 비정하고 있다.
상술한 툴레에서 이름을 따온 역사 속에서 아주 유명한 단체가 있다. 바로 독일의 툴레 협회, 툴레 게젤샤프트Thule-Gesellschaft이다. 툴레회의 전신 격 단체는 "게르만 고대 유물 연구회Studiengruppe für germanisches Altertum"로 이 게르만 고대 유물 연구회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뮌헨에서 설립된 독일 민족주의 사상이었던 뵐키쉬Völkisch 운동과 신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단체로, 이 조직의 뮌헨-바이에른 지부의 수장으로 선출된 루돌프 폰 세보텐도르프Rudolf von Sebottendorf의 영도 하에 툴레 협회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전신 시절부터 독일 노동자당, 그리고 독일 노동자당의 후신인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즉 나치당의 후원 조직이 되었다.
툴레 협회의 주요 관심사는 유럽 역사상 기원전부터 전수되어온 각지의 신비주의 지식과 더불어 독일 민족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아리아 인종의 기원에 관한 탐구였다. 게르만 연구회 시절부터 이 단체에 가입 희망자는 자신의 혈통에 대한 "혈통 선언"이라는 통과 의례를 거쳐야만 했다. 혈통 선언은 다음과 같다.
"Unterzeichner versichert nach bestem Wissen und Gewissen, daß in seinen und seiner Frau Adern kein jüdisches oder Farbiges Blut fließe und daß sich unter den Vorfahren auch keine Angehörigen der Farbigen Rassen befinden."
"선서자는 자신과 배우자의 핏줄에 유대인이나 유색 인종의 피가 흐르지 않으며, 조상 중에 유색 인종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확신합니다."
툴레 협회의 추종자들은 인종 전쟁, 특히 유대인과의 대결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매우 극우적이었으며 구성원들은 노동자부터 귀족 계층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바이에른에 잠깐 들어선 사회주의 국가 탄생 당시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도모했고, 해당 정부에 의해 회원 7명이 대공, 백작부인, 이론가 노이하우스 등 여러 요인들이 처형당하는 등 이론 탐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매우 극우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나치당이 직접적으로 정계에 진출하자 이에 발맞춰 협회 조직원들이 나치당에 가입해 정당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집권하기 훨씬 전에 나치당은 툴레 협회, 프리메이슨 등 비밀 사교 클럽들과의 연계를 중단하며 툴레 협회는 자동적으로 해산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과 활동은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즘 사상의 초석이 되었으며 나치당의 지적 및 이념교육부장을 지낸 알프레드 에른스트 로젠베르크Alfred Ernst Rosenberg는 툴레 협회의 회원이며 협회가 발간한 저작물의 표현을 나치당 이념 서적에 그대로 인용하였다. 나치당의 수뇌부에는 오컬트, 신비주의와 당시 서양 기준에서도 반기독교적이고 이교도적인 의식 등에 심취한 인사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툴레 협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Die Glocke 나치 비밀 무기 프로젝트 : 디 글로크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실로 무시무시한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동시에 이들은 당시와 지금 기준에서도 과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하는 새로운 발명품들 또한 많이 만들어냈다. 그들은 최초의 제트엔진 전투기를 만들어냈으며, 모든 로켓의 어머니가 되는 V-2 미사일을 만들어냈다. 이런 나치 독일의 시대를 앞서간 군용 발명품 혹은 실험용 무기들을 분더바페Wunderwaffe, 기적의 무기라고 부른다. 개중에서도 가장 기상천외하고 시대를 지금보다도 더 앞서간, 어쩌면 만들어졌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무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디 글로크Die Glocke이다.
폴란드의 작가 이고르 위트코우스키Igor Witkowski는 자신의 저서 기적의 무기에 대한 진실Prawda o Wunderwaffe에서 나치 과학자들이 설계한 "종"(Glocke의 뜻은 종이다)이라는 장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치는 높이가 약 4미터, 직경이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종 모양이었으며, 흐르는 금속으로 보이는 액체로 채워진 여러 개의 고속 역회전 실린더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의 기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또 다른 작가 닉 쿡에 의하면 아마도 UFO처럼 반중력 효과가 있거나, 심지어는 타임머신과 같은 기능을 실험하기 위한 장치라고도 설명되며, 빛을 내며 회전하는 기계임에는 분명한 것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사와 무기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류 학계에서는 디 글로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만, 디 글로크가 터무니 없는 기능을 하지 않았더라도 실존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이 디 글로크의 행방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의해 패망하기 직전에 폐기 처분했다는 설, 또 어떤 이에 의하면 미국이 나치 독일 출신 과학, 공학자들을 위장시켜 미국으로 영입한 작전인 페이퍼 클립 작전과 함께 미국의 손아귀에 넘어갔다고도 하며, 심지어 어떤 이들은 히틀러의 탈출 장치로 이용되었다는 주장도 펼친다.
- Arnold's Real Height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진짜 키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warzenegger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인으로 보디빌더이자 영화배우, 그리고 정치인으로 유명한 전 세계적인 셀러브리티이다. 이론가들이 그에게 주목하는 점은 별 다른 것은 없지만, 그들이 슈워제네거에게 이상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의 키이다. 그의 프로필상 키는 6피트 2인치, 188cm이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찍힌 사진 속의 키가 전부 다 다르다는 점을 들어 그의 진짜 키가 어떻게 되는지, 프로필을 속인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며 키가 줄어든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수상쩍게 여긴다.
- Natural Park Closures 국립공원 폐장
국립공원은 주로 보존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자연공원으로, 국가 차원에서 정부가 조성하고 보호, 운영하는 장소이다. 나라마다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운영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지만, 야생 상태의 자연을 후대를 위해 보전하고 보존된 자연을 국가 차원의 자랑거리이자 상징으로 삼고 국민들과 공유하겠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최초의 국립공원은 1872년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만든 미국 서부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이다. 당시의 모토는 "국민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한 공공 공원, 유원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옐로스톤은 법적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칭되지는 않았지만 대중은 언제나 국립공원 National park라고 불러왔다. 설립부터 관리까지 법적으로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최초의 국립공원은 1911년에 설립된 캐나다 퀘벡주의 캐나다 공원이다. 국립공원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의 국립공원 총면적은 5240만 에이커로, 서울특별시 350개의 면적에 달하는 광활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러한 국립공원들은 자연보호와 동시에 국민과 외국 관광객 등에게 그 나라의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늘 개방되어 있지만, 여타 공원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이유로 폐장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국립공원이 기상의 악화, 계절에 따른 자연재해에 대한 우려로 인해 공원 내 일부 지역 출입 제한 혹은 시설물 개선을 위한 재단장을 이유로 단장기간 폐장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국립공원의 폐장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립공원의 넓이가 어지간한 작은 나라 크기에 달하는 미국의 경우 폐장된 국립공원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바깥의 대중들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기이한 현상이 목격되는 국립공원, 크립티드와 같은 괴생명체가 발견됐다고 알려진 공원 등의 폐장은 단순한 공원 관리 목적에서의 폐장이 아니라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목적이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 Lake Baikal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와 부랴트 공화국에 걸쳐 있는 면적 3만 1천7백 제곱킬로미터, 담수량 2만 3천6백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넓고 깊은 호수이다. 면적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크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크지만 담수량은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지구상의 얼지 않은 민물의 총 23%가 이 바이칼 호수에 몰려있다. 이는 최대수심 무려 1642미터에 달할 정도로 호수가 깊기 때문인데, 이렇기 때문에 담수량 전체는 북미의 그 넓은 오대호 다섯 개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 현대 지질학상으로 바이칼 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전에 형성된 호수이며 수질도 매우 좋은 호수이다. 이렇든 매우 크고, 깊은 물에 수질도 좋으니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바이칼 호만의 고유종이 많다. 이런 고유성 때문에 유네스코는 1996년에 바이칼 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렇듯 천혜의 자연경관인 바이칼 호수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곳, 지구의 기운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했으며 지금도 전 세계의 주술사, 무당, 각종 신령스러운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그 힘을 행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이칼 호수가 더 미스터리한 것은 바로 이 호수 아래에 우리가 알지 못한 고등 생명체가 문명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유명 UFO 연구가이자 전 소련 해군 장교였던 블라디미르 아자자Vladimir Azhazha는 러시아 정부가 기밀 해제한 문서를 근거로 들었다. 아자자에 따르면 1982년에 7명의 소련 군 소속 잠수사들이 바이칼 호 수중에서 훈련을 하다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수중 물체를 발견했으며, 또한 은색의 의복 혹은 군복을 입은 인간형 생물체의 군집, 혹은 분대로 추정되는 무리와 맞닥뜨렸다고 한다. 잠수사들은 인간형 생물체를 포획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반격을 당하고 7명 중 3명이 사망, 나머지 생존자도 중상을 입고 수상으로 재빨리 부상할 수밖에 없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소련의 냉전시대 기록은 신뢰성이 부족하기로 유명하고, 더군다나 교차검증 가능한 다른 자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상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주류 학계에서도 바이칼 내 외계인 혹은 지적 생명체 문명설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 Dancing Plague 춤 전염병
1518년 7월 유럽 제1의 강대국 신성로마제국의 봉토 알자스(현 프랑스 지방)의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마담 트로페아라는 여성이 거리에서 격렬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트로페아는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곧이어, 36명의 시민들이 이 광란의 춤바람에 합류했다. 8월이 되자, 이 '춤 떼'는 마치 전염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400명으로 늘어났다. 이윽고 계속된 춤에 기진맥진해진 이 춤을 멈출 수 없는 무리들 중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뇌졸중과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했다. 이 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는지 원인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아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9월이 되자 진이 빠진 이 무리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들의 불경함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속죄하기 위해 스트라스부르 인근 산에 있던 성 비투스의 성지로 몰려갔다. 이윽고 이 춤 전염병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한 여름의 광란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기록까지 남아있는 실재했던 사건이다. 스트라스부르의 시의회 기록, 지역 연대기, 당시 알자스 사람들의 개인 기록과 스트라스부르 성당의 기록까지 이 광란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사료에 따르면 한 여성이 춤을 추기 시작한 이후에 따라 춤을 춘 사람들이 순식간에 불어났고 잦아들지 않아 지방 시 지도층까지 개입할 정도로 사태가 커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의회는 춤을 추는 것을 막기 위해 음악을 금지했고, 효과가 없자 공공장소에서 춤을 추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지역 교회는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 성 비투스의 형벌이니 속죄의 뜻으로 성수를 뿌리고 십자가를 그려 넣은 신발을 신고 손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서 근처의 성 비투스의 성지로 가서 신께 용서를 빌라고 엄중히 요구했다.
현대에 와서 이 광란 현상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론을 내놓는다. 먼저 당시의 좋지 않은 영양 공급 상황을 미루어 당시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었던 빵의 주재료인 호밀에서 자라는 맥각 곰팡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섭취하면서 맥각에 중독되어 정신착란 상태에서 주체할 수 없이 춤을 추게 된 사람들이 떼를 짓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맥각에 중독되었다고 해서 한 번에 십 수일이 넘게 춤을 춘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알자스 지방 사람들이 받았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집단적인 히스테리로 번져 이런 기현상을 낳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알자스 지방은 중세부터 근대까지 프랑크,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에 소속되며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외부의 압력을 받은 지역이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무대가 바로 이 알자스로 당시에도 신성로마제국이면서 프랑스 왕국의 압력을 매우 많이 받는 지역으로 주변 강국에 의해 시달림을 많이 받는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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